의례 기록류는 철장 유물 중에서 가장 많은 범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한 유물들은 의궤 및 왕실 일원과 명 황실 관련 기록물입니다.
의례 절차와 준비 과정 마무리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추적하는 기록물은 장정의 장식적 요소와 형태에도 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같은 기록물이라 하더라도 목적에 따른 장정 변화를 보여주는 서적이 많습니다.
특정 위치에 봉안, 왕실 인원들이 보기 위한 어람, 예람을 위한 유물들은 화려한 비단과 장식된 황동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기록물로써 역할을 위한 서적들은 철로 묶여 사고에 보관되거나 각 기관들에 보관되어 오늘날의 백과사전, 백서류와 같은 참고문헌의 역할을 했습니다.
의궤라는 용어는 본래 유교 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에서도 사용되던 특정 의례 기록물을 의미했으나 사장되었고 현재는 조선왕조에서 만들어진 고유 의례 기록물류를 의미합니다. 한반도에서도 의궤를 별도의 의례 기록물로 서술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예로, 경주부사 선생안에서 일부 보관용 서책을 의궤라 칭하거나 불교 문헌 중 의궤로 칭해진 유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궤는 특히 철장 형태와 방법 연구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많은 연구들이 어람용의 화려한 장식 장정의 형태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록물의 중요성과 가치는 의심할 바 없지만, 다른 유물에서 나타나는 철장 형태 분석에서 의궤에 종속적으로 분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철장이 의궤만의 고유 형태라는 뉘앙스가 나오거나, 혹은 비단과 장식 변철을 쓴 것 자체가 의궤에 버금가는 지위와 자부심을 나타낸다고 하는 결론이 나기도 합니다.
적어도 강한 중앙집권적 체계를 갖춘 조선에서 왕실 일원(어람용)만을 위한 형식을 지방 관청과 양반 계층이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라는 해석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해당 형태가 왕실 일원 뿐만 아니라 고위 관직들 수준까지는 허용되는 수준이었다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의궤는 크게 어람, 분상용 2가지로 분류되며 시기나 사업에 따라 반포를 위한 활자본 의궤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내 및 해외 소장 의궤는 많은 사람과 기관의 손을 거쳐 현대 소장 기관들에 안착되었습니다.
왕실 일원들이 만든 어제, 어필류는 기록물의 생산 주체의 지위를 고려해 화려한 장식으로 묶였습니다. 대한 제국시기 황제국으로 지위를 격상 시키고 종묘에 봉안을 목적으로 만든 국조보감 또한 화려하게 장식된 비단과 변철을 보여줍니다.
왕실 일원과 더불어 명나라 황실과의 외교 관계에 관한 문서들나 명 황제에게 지내는 제사 기록들 또한 황동으로 된 장식 철장으로 묶였습니다. 후자의 예로 황단의, 황단중수의, 추감황은편등이 있습니다.
황단의, 황단중수의: 임진왜란-정유재란시기 조선을 도운 명나라의 신종(만력제)와 마지막 황제 의종의 제사 의례를 기록한 기록물. 창덕궁 내에 대보단(황단)이라는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행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추감황은편: 명나라와 외교관계에서 받은 여러 칙령, 서신등을 모아 영조 시기성책한 서적이다.